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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보다 긴 순간을 사로잡는 방법

어반 스케치

예전에는 별 생각없던 취미란을 보면 참으로 막막해집니다. 그 흰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 지 갈 곳잃은 손은 머리를 부여잡게 됩니다. 문득, 영어시간에 'WHAT YOUR HOBBY?'를 입이 닳도록 말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에 대한 대답도요. 그러나 그 때의 대답은 다 큰 성인이 말하기엔 부끄럽고, 또 실력도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읽기와 노래부르기는 진부한 것 같고... 그리고 생각합니다. '뭐라도 배워야겠어.'

검색을 하는 당신이 마주하게 되는 선택지들은 다양하지만 어쩐지 선뜻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시간과 체력, 그리고 돈이 필수불가결해보이는 취미 생활이 내 삶을 더 윤택하기 만들기보다는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취미를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당신에게 공유하고픈 취미가 있습니다. 바로 어반 스케치입니다.

ⓒInstagram @jini77park
“어반스케치란?”

약칭, USk. 직역해보자면, '도시에서 스케치를 하는 행위'인 어반스케치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손으로 옮겨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2007년 스페인출신의 기자이며 삽화가인 가브리엘 캄파나리오가 출범한 국제 미술운동을 뜻하기도 하는데, 단지 즐거움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반스케치를 하는 어반스케처에게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1.우리는 실내외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다.

2.우리의 드로잉은 여행지나, 살고 있는 장소,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다.

3.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4.우리가 본 장면을 진실하게 그린다.

5.우리는 어떤 재료라도 사용하며 각자의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6.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7.우리는 온라인에서 그림을 공유한다.

8.우리는 하나씩 그리며 세상을 보여준다.

언뜻보면 쉬워보이는 규칙들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온라인에 공유하기도 부끄럽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것도 생각외로 너무 어려워서 혼이 났습니다. 다 그리고 나서 본 작품도 뭔가 진실되지 않은 것 같아서 본의아니게 규칙을 어기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이 스트레스를 주기보다는 뭔가 해내고 있다는, 좋은 에너지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순수하게 재미를 위한 이 시간이, 이 행위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저 어딘가에 나와 같은 행위를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 우리로 통칭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말이죠.

ⓒInstagram @jini77park
“장비병은 잠시 내려놓고, 있는 걸로 시작하기”

어반스케치는 장벽이 높은 취미생활은 아닙니다. 여럿이 해도 되지만, 혼자해도 되며 실력 또한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 장에 손에 익은 필기구 하나. 연필도 좋고, 모나미 펜도 좋습니다. 사용해보고 싶었던 것 도구들을 사용해 볼 기회이기도 합니다. 흑연을 하나 사보기도 하고, 수채화를 해보겠다며 물붓도 장바구니에 담아봅니다. 선물받았던 만년필에 잉크를 다시 묻혀보는 것도 괜찮지요. 그 이상 필요할 수도 있지만, 욕심은 종이 안에서 내보도록 합니다. 스케치북을 구매해보는 것도 괜찮고, 사용하지 않는 공책을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반드로잉을 바쁜 당신이 갖기 좋은 취미인 건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종이에 점을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릴 공간이 있다면 그냥 하면 됩니다. 더 잘그리기 위해서 유튜브를 참조하고, 어반스케처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은 정말 선택 사항인 것이죠. 단지 규칙은 저 8가지일 뿐이죠. 저게 버거워지는 날에는 어반 스케치가 아니라 단순한 드로잉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됩니다. 저처럼 말이죠.

ⓒInstagram @jini77park
“사진보다 애착있게, 오늘을 일상으로 담아내다”

오늘 내가 먹은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풍경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곤하죠. 기록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어서 말이죠. 어반 스케치의 마지막 규칙, 기억나시나요? '우리는 하나씩 그림그리며 세상을 보여준다.' 피사체를 담아내는 렌즈에 따라, 그리고 찍는 사람에따라 사진이 달라지겠지만, 아무렴 사진으로 일상을 담아내는 것과는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풍경을 앞에 두고도 다르게 표현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을 지워내고 오롯이 자신이 집중한 피사체 하나만을 그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앉아있는 사람을 중점적으로 그리기도 하죠. 같은 테이블 위의 브런치 세트를 그릴 적에 저는 맞은 편 의자를 안그렸는데 누군가는 책상마저 그리지 않고 음식에만 집중하더군요. 그리고 그 크로와상의 결을 표시하느라 다른 건 뒷전이기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날의 분위기와 내가 집중하던 것을 담아내는 그 종이는 실물인지라, 어쩐지 더 애착이 갑니다.

ⓒInstagram @jini77park
“취미에 대하여”

사실 그런 생각도 합니다. '취미생활이 있어야하나?'라고 말이죠. 없어도 그만이고 거기에 투자 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말이죠. 돌이켜보면, 여유있고 재밌는 생활을 한다는 보여주기식의 취미를 가져야한다는 어떤 압박감이 있던 것 같습니다. 전에는 프랑스 자수를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평화로워지긴 커녕 화만 잔뜩나서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취미는 단지 즐기는 것일 뿐. 그냥 흥미가 생기는 일에 해보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해보고 안맞으면 말고 잘맞으면 이어가면 되는 거겠죠. 이기고 지는 게 없는, 그래서 성취감이 있어도 없어도 되는 내게 좋은 시간을 취미. 오롯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유튜브 : 그림쟁이지니

인스타그램 : jiin77park

콘텐츠 크리에이터 - 곽경린